2011. 7. 18. 16:53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했을 때 그 곳 대륙에는 말(馬)이 없었다. 그래서 백인들이 가지고 간 말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는 처음 보는 동물이었는데, 이 때 그들은 몸을 금붙이로 치장하고 있었다. 콜럼버스 일행은 말타기 시범을 보이면서 말이 이용가치가 큰 동물임을 증명한 다음, 말과 금을 교환하는데 성공하였다. 물론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식의 교환이었다. 이 이야기가 정확한 것인지는 여기에서 중요하지 않다. 하여튼, 그래서 인디언들이 속았다거나 큰 손해를 보았다고 보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다. 그 뒤 인디언들은 백인들보다 말을 더 잘 타게 되었고, 그 덕에 신속히 멀리 이동하거나 효과적으로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 빨리 달리고 더 많은 사냥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인디언에게는 혁신적인 이익이 되지만, 금 덩어리 자체는 인디언의 민생고를 해결하거나 문화적 발전을 이룩하는데 하등의 기여를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금은 인디언보다는 백인들에게 더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었으며, 결국 한가지 재화가 덜 필요로 하는 곳으로부터 더 필요로 하는 곳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다루는 동물에 대한 과거의 연구자들 중에는 "W"와 "Y"가 있다(동물명명규약의 "도의적 준수 사항"을 준용하여 여기에서 본명을 밝힐 수는 없다). 두 사람은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많은 신 분류군을 발표하였으나, 이들은 불행이도 갈수록 악명을 떨치고 있다. W는 한 유명한 자연사박물관에서 근무하였는데, 겪어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가 보관한 표본 중에는 "holotype"註1) 이라고 적은 표본병 속에 간간히 2마리가 들어가있기도  하고, 때로는 그 2마리가 서로 다른 종이어서 조사한 사람을 경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필자도 그의 모식표본을 빌어 본 적이 있는데, 논문에는 "paratypes註2) 12마리"와 같이 적혀 있으나 실제로 그 표본들을 다시 조사한 결과 14마리가 들어 있었다. 필자는 2마리를 챙기고 나머지 12마리만 되돌려 주었는데, 이 때 결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는 않았다.

   Y는 더 "개판"이다. 그가 남긴 모식표본을 하나라도 본 사람이 없다. 논문에는 모모 기관에 표본을 기탁했다고 기록해 놓았으나, 그 기관에 문의해보면 Y가 모식표본을 기탁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그의 자손과 접촉하였는데, 이사 다디면서 잃어버렸는지, 그 자손이 내다 버렸는지, 아니면 Y가 살아있을 때 버렸는지는 몰라도 집에 모식표본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여하튼 W와 Y는 후세 사람인 우리들에게 악명으로서 회자되고, 다시 학생들에게 전수되어서, "W나 Y같은 놈", "W, Y 같은 사람이 되지 마라" 등으로 웃음거리 또는 교육자료로 널리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동물명명규약註3)에는 모식표본(특히 holotype과 allotype註4))은 저명 자연사박물관에 기탁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학술지에 따라서는 이를 강제 규정으로 명문화하고 있으며, 한국동물분류학회지에도 이를 투고 규정으로 명문화하였다. 국내의 연구자들은 동일 분야의 연구자가 있는 외국의 자연사박물관에 모식표본을 기탁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미국 스미스소니언의 자연사박물관에는 필자가 다루는 동물의 전문가가 있으므로, 필자는 모식표본을 이곳으로 보내고 있다. 스미스소니언에서는 이 표본들이 불법적으로 채집된 것이 아니라는 서약을 받고 표본을 접수하는데, 표본을 기탁해 주어서 고맙다는 연락을 한다. 물론, 국내에 믿을만한 자연사박물관이 생기면 결코 우송료 더 들이면서 외국에 표본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국내에 자연사박물관이 없어서, 또는 모식표본은 매우 소중한 것인데 외국에 보내는 것은 "비애국적"인 처사라서, 외국에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내가 모식표본을 내 금고 속에 넣어 "영구히" 보관하기를 시도하거나 근무하는 대학의 어느 곳에 꼭꼭 숨겨놓고 정년 퇴임 후나 죽고 난 뒤까지 보관되기를 바란다면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아무리 기재를 상세히 잘 했다고 하더라도 모식표본을 빌려달라고 하는 사람이 반드시 생기고, 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박물관 직원에게 떠맡기면 될 이런 일을 죽은 뒤까지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면 안될 일이다.

   또, 모식표본은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하게 기재 원고를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재조사하기 어려울 만큼 모식표본이 불완전하거나 표본 자체를 분실했다면, 당연히 그 종에 대한 발표를 포기해야 한다.

   필자는 과거에 모식표본을 근무하는 대학에 보관한다면서 몇몇 신종을 기재한 적이 있다. 이 것이 크게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된 것은 그 직후였는데, 그 때부터 갖게 된 마음 고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다행이 최근에 인접국의 한 학자가 내가 과거에 발표한 종의 대부분을 다시 다수 채집하고 그 학명이 그의 논문에 기록되기 시작하면서 필자는 만세를 부르게 되었는데, 이와 같이 필자의 마음 고생이 해소된 이유를 알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백인들이 금덩어리를 소중히 생각한다는 사실을 인디언들이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금은 사실 인디언에게 중요한 것은 못된다. 이것은 지키는 데 힘이 필요하다는 "주제 파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말과 교환하지 못하고 금만 빼앗기거나, 더 고집을 부리면 목숨마저 위태롭게 된다.

   우리가 모식표본을 영구히 보관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기까지는, 즉 모식표본이 중요한 것임을 진정으로 알게 될 만큼 문화적 수준이 향상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아야 한다. 규모가 큰 자연사박물관이 생긴다고 해도 금방 그 능력이 갖추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대개 순간의 시간만 필요하지만, 아는 것을 행동으로 나타내는데는 퍽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그 당사자가 개인이 아닌 집단인 경우에는 그 시간이 더 소요될 것이다.

필      자: 강릉대학교 생명과학과 김 일 회 교수
기고 문지: 분류학회보 제37호                           
기고 년월: 2002년 12월 31                                    
페이지 면: 8, 9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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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註1) holotype(완모식표본): 한 종을 대표로 하는 개체 표본들 중 기준이 되는 개체(한 개체) 해부 표본을 일컫는다. 이 개체의 형질 기재와 도판 을 토대로 하여 이 개체가 속한 종의 중요한 형질(characters)이 정해지고 이를 토대로 하여 변이종과 성적이형 등의 변이차를 규명하는 척도를 만들어낸다. 그러한 의미에서 holotype은 보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완모식표본은 훼손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註2) Paratypes(부모식표본): 완모식표본(holotype)이 정해지면 신종(new species) 기재 투고 문(후에 원기재)에 나머지 관찰 혹은 포획된 표본들을 일컫는다. 여기에 개체들 간의 변이(variations)들을 기재할 수도 있다. 특히, 주로 암컷의 형질을 기재하고 해부 후 보관한다. 나머지 개체 표본들은 완모식표본을 뒷바침해줄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된다.

註3) 동물명명규약: International Code of Zoological Nomenclature 이라고 하며 Carolus Linnaeus(1707-1778)가 제안한 이명법(Binominal nomenclature)을 기초로 한 학명 기재 및 표본 관리 등과 같은 분류학적 학문 자료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정한 규약(protocol)이다. 이 규약은 국제동물명명법심의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Zoological Nomenclature, ICZN)에서 관리, 제정하고 있으며 이 규약에 따라 국제생물과학협회(International Union of Biological Science, IUBS)에서 학명과 종 구분을 따르고 있다. 분류학자는 반드시 이 규약에 따라 논문 기재, 조사, 명명, 분류, 표본관리를 따라야 한다.

註4) allotype: 완모식표본의 다른 성(sex)표본을 일컫는다. 대개 동-식물들은 약간의 성적 이형(sexual dimorphism)이 있어(사람도 그렇다.) 형질상 차이가 있다. 이를 기재하고 증거로 확보하기 위해서 성이 다른 대표 한 개체를 설정하고는 한다. 그러나, 최근 경향에 의하면 allotype은 따로 구분하지 않고 부모식표본으로 표현 기재하며 현재 학회의 규준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