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조상의 이주사(史): 아웃 오브 아프리카, 그리고 컴백홈
지금으로부터 약 20만년 전, 「현대인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최초의 인간들은 아프리카를 떠나 전세계로 퍼져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은 편도여행(one-way trip)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중 일부가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왔던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과학자들은 유전자 추적을 통해 "다른 지역에서 남부 아프리카로 역이동(reverse migration)해 온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를 찾아냈는데, 이는 유럽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아프리카에 도착한 것보다 훨씬 전에 발생한 것으로, 2단계에 걸쳐 일어났다고 한다.
이번 연구는 「아프리카 유전체 분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으며, 보다 우수한 분석도구로 무장한 과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되는 인류의 이주사(history of human migration)는 매우 복잡한 분야로, 오랫동안 유골, 유물, 언어 등을 분석하는 학자들에 의해 지배되어 왔지만, 인구유전학자들(population geneticists)의 등장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금까지 고고학과 언어학이 담당했던 일을, 이제는 유전학이 대신하고 있다. 바야흐로 아프리카 유전학(African genetics)이 대세"라고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의 카리나 슐레부시 박사(유전학)는 말했다.
「역이동」의 징후는 이전에도 포착된 적이 있다. ① 지난 10년 동안 "최초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 이벤트」가 일어난 후에 아프리카로 되돌아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증거가 속속 제시되어 왔다. ② 한편 보다 최근에는 DNA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소수의 동부 아프리카인 집단이 남부 아프리카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사냥-채집을 하던 원주민들에게 유목문화를 전파하고 그들과 어울려 살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마침내 하버드 의대의 인구유전학자들은 지난 7월 30일 arXiv(프리프린트 서버)에 게시된 새로운 논문을 통해, ①과 ②의 2가지 역이동을 결합하는 통합이론을 제시했다. 그들에 의하면, "남아프리카의 코에-산族( Khoe-San; 일명 부시맨)이라는 소수민족의 DNA를 분석한 결과, 2단계 역이동의 흔적을 찾아냈다"고 한다.
(1) 연구의 개요
하버드 의대의 연구진은 먼저, 약 1,000명의 아프리카인들(22개의 아프리카 소수민족을 대표하는 약 200명의 남부 아프리카인 포함)의 유전체를 분석하여, 50만 개 이상의 돌연변이 구역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코에-산族의 DNA를 분석하여, 다른 소수민족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DNA 영역을 찾아냈다. 연구진이 찾아낸 DNA 영역에는 군데군데 돌연변이 구역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돌연변이 구역들을 모두 연결해 본 결과, 그 패턴이 非코에-산族에게서 나타나는 돌연변이 패턴과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단, 코에-산族이 보유하고 있는 돌연변이 구역들은 공여자 그룹(donor group)의 돌연변이 구역에 비해 짧고 산재(散在)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마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유전자 재조합(genetic recombination)이 일어나면서, 공여자에게서 물려받은 염색체가 단편화(fragmented)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단편화의 정도(extent of the fragmentation)를 측정함으로써, 문제의 돌연변이 염색체가 코에-산族의 유전체에 도입된 시간을 추정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아프리카의 역사에서 2차에 걸친 대규모 역이동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징후를 찾아냈다. 첫 번째 역이동은 약 3,000년 전 非아프리카인들이 동부 아프리카로 들어온 것이고, 두 번째 역이동은 900~1,800년 전 동부 아프리카인들이 남부 아프리카로 이동한 것으로 밝혀졌다(첨부그림 참조). "코에-산族은 아프리카 소수민족 중에서 유전적 고립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2단계 이동으로 인해 일부 코에-산族 주민들이 보유하게 된 非아프리카인의 DNA는 실제로 1~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이번 연구를 주도한 데이비드 라이히 박사와 조지프 피크렐 연구원(포스탁 펠로)은 말했다.
과학자들은 과거에도 인종혼합(admixture), 즉 이민족간 교배(interbreeding)의 증거를 찾아낸 적이 있다. 그러나 한 소수민족의 유전자 프로파일 안에서 여러 번의 인종혼합(multiple admixtures)이 일어난 증거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의는 `동부 아프리카인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非아프리카인의 유전자도 함께 이동했다는 것`"이라고 웰컴트러스트생거연구소의 루카 파가니 박사(유전학)는 논평했다. (파가니 박사는 `非아프리카인의 에티오피아 역이동`을 연구해 왔다.)
"이번 연구결과는 과거의 고고학적·언어학적 연구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언어학적으로 볼 때, 코에-크와디族 중에서 남부 아프리카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조상은 동부 아프리카인인 것으로 판단되는데, 실제로 이번 연구결과를 보면 그들의 유전체에서 非아프리카인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00년 된 소와 양의 유골이라든가 동부 아프리카의 유목문화 유적이 남부 아프리카 전역에서 발견되는 것을 봐도, 이번 연구의 신빙성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인구유전학적 방법은 고고학적 데이터가 부족한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는 훌륭한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고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사라 티시코프 박사(인구 인류학)는 말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非아프리카인들을 맞이한 동부 아프리카인 원주민들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들을 찾아온 非아프리카인들 자신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번 연구에 의하면, 코에-산族에게서 발견된 非아프리카인의 유전자는 현대의 남부 유럽인들과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 남부 유럽에 살던 원주민들이 그대로 동부 아프리카로 이주했다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그 당시 남부 유럽에서 동부 아프리카로 건너간 사람들은 유럽의 원주민들이 아니라, 중동 또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남부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로 이주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다(GTB2013080220).
(2) 유전자칩의 개발
이번 연구가 「아프리카의 복잡한 유전학적 역사」를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론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아프리카를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양성을 지닌 대륙`이라고 부르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또한 코에-산族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유전적 계보(genetic lineages)로 유명하다. (코에-산族은 아프리카를 떠나기 시작했던 현대인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첫 번째 부족으로 알려져 있다.)
인류사(史)에서 차지하는 엄청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전역의 부족들로부터 수집한 방대한 유전학적 데이터를 과학자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아프리카에는 2,000여 개의 인종집단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 DNA 염기서열이 해독된 집단은 겨우 한줌에 불과하다. 이처럼 연구가 지지부진했던 것은,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져 있는 부족들을 한데 모은다는 것이 윤리적·지리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그 동안 유전학적 연구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인류학보다는 의학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것은, 인간의 유전적 다양성을 분석하기 위해 설계된 초기 마이크로 어레이들(DNA microarrays)이 유럽인과 유럽-아메리카인의 유전체에 존재하는 돌연변이를 탐지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프리카인들의 돌연변이(다양성)를 포착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2011년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상황은 반전되었다. 2011년 라이히 박사를 비롯한 유전학자들은 애피메트릭스社(Affymetrix;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소재)와 손잡고 Human Origin Array라는 유전자칩(gene chip)을 개발해 낸 것이다. 새로운 유전자칩은 보다 많은 DNA 샘플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돌연변이구역들을 표적으로 하고 있다. 라이히 박사와 피크렐 연구원이 이번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유전자칩 덕분이다. "이번 연구는 최근 인류사 연구에서 나타나고 있는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를 상징한다. 지금껏 우리는 非아프리카인들을 위해 설계된 도구를 이용하여 아프리카인들을 연구해 왔다"고 파가니 박사는 말했다.
"옮긴이 한마디"
네안데르탈인 등 다른 원시 인류와의 교류도 있고, 아프리카에서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하기도 하고... 과거의 인류는 생각보다 더 복잡한거같네요~ 동아시아인도 다른 지역에 비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자세히 분석하면 재밌는 결과가 많이 나올거같은데...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서 아쉽네요.
※ 원문정보: J. K. Pickrell et al. Preprint at http://arxiv.org/abs/1307.8014; 2013
- 출처 : 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 201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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