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라는 소설 중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살인사건을 조사 중인 경찰과 식물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가 사건 현장에 있던 나무에게서 취조를 한다.
그 나무가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기 때문. 식물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인지할 수 있으며 특이한 파동을 통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소설 상에선 나무의 독백 부분도 등장한다.
실제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사실 ‘식물이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라는 의문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들도 이뤄진 바 있다.
거짓말 탐지기 통해 감정 확인?
이
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실험은 바로 클리브 벡스터(Cleve Backster)의 거짓말 탐지기 실험이다. 벡스터는 미국 CIA에서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로 있었던 사람인데, 어느 날 식물에 거짓말탐지기를 연결하고 식물의 반응을 살피던 도중 놀라운 현상을
확인했다. 식물에게 물을 주거나 잎을 태우는 등 여러 가지 행동을 하자 각기 다른 반응이 나타난 것.
벡스터는 이를
두고 “식물은 기쁨과 두려움을 구분하며 기억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심리적 작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은
과학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거짓말 탐지기는 대상자의 혈압과 맥박, 호흡의 변화를 통해 감정 상태를 알아내는 원리이기 때문에
이런 요소들이 없는 식물에 거짓말 탐지기를 연결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벡스터의 연구는 식물에
대해 또 다른 시각을 갖게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식물이 주변의 변화들에 특별한 반응을 나타냈다는 것은 식물이 그 상황을 인지하고
있음을 예측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에 벡스터는 ‘식물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중 유명한 실험이 식물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식물, 감정이 있기 때문일까
음악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져 있다. 음악이 뇌파를 자극해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생체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 여러 실험들은 식물이 음악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968
년 미국의 과학자 도로시 레털랙(Dorothy Retallack)은 호박에 클래식음악을 들려주자 호박 덩굴이 스피커를 감싸며
자라는 반면에 시끄러운 록 음악을 들려준 호박의 덩굴은 스피커를 피해 벽을 넘어 자라는 것을 관찰했다. 이 실험을 통해 레털랙은
식물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그에 따라 영향을 받으며, 심지어는 음악을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음악을 들려주었는지의 여부에 따라 수확량이 달라지거나 발육상태에서 차이가 나는 등의 관련 실험들이 진행돼 왔다. 그 결과 음악은
확실히 식물에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식물이 청력을 가진 동물들처럼 음악을 ‘듣는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음악에 따라 변화가 나타나는 것일까. 과학은 이와 같은 현상을 음파가 가진 에너지로 설명하고 있다.
스
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은 파동의 일종인 음파. 파동은 매질을 진동시키며 에너지를 전달하게 된다. 적절한 음파는 식물 세포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게 되고 광합성과 호흡 등 식물의 대사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만들어 준다. 즉, 귀가 있어 음악을 듣는다기 보다는
음파로 인한 자극을 받게 되는 것.
그렇다면 좋아하는 음악을 가리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까. 음악의 종류에 따라
식물에 전달하는 음파의 형태와 에너지는 달라진다. 록음악처럼 강렬한 음악의 경우는 전달되는 에너지가 과도해 오히려 피해를 주기도
한다. 식물들은 햇빛이 잘 비치는 곳을 향해 자라나는 것처럼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록음악을 틀어 준 레털렉의
호박덩굴이 스피커를 피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설명으로 미루어 볼 때, 식물이 음악의 영향을 받는 것은 맞지만
역시 식물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식물의 감정’ 밝혀진다면
이런 이유로 식물의 감정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비주류과학의 하나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거짓말 탐지기 실험을 진행했던 클레버 벡스터는 그 이후로도 계속 실험과 연구를 계속해 왔다.
그
는 식물 외에도 무정란에 전극을 연결해 실험을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요구르트에도 실험을 진행했다. 요구르트 내부 세균들의
인식능력을 알아보고자 했던 것. 그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무정란이나 요구르트 속 세균들 모두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나타냈다고 한다.
클레버 벡스터는 그 외에도 여러 실험을 진행했지만 결정적인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학계의 인정을 못 받고 있다. 현재의 과학은 ‘동물들이 감정을 가지는 것은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상황에
따라 뇌에서 분비되는 각종 신경전달물질들이 신체에 변화를 가져다주거나 상황판단에 영향을 준다는 것.
하지만 뇌가
없는 식물에게서도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확인된다면 이는 비단 생체적 활동의 결과로만은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뇌가
없더라도 생명체라면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뇌가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게 한다. 비주류과학에서
말하는 ‘영혼’ 혹은 그와 비슷한 존재들이 그것이다.
또한 앞서 소개했던 소설의 한 내용처럼 식물의 반응을 범죄 수사에 활용할 수도 있게 될지도 모르며 이에 대한 연구 분야가 나타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