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은 필수 영양소이자 생명체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이다. 또한 단백질은
세포 내에서 중요한 일들의 대부분을 수행하는 생체분자이다. 생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생체 촉매인 효소, 세포 내 신호전달 과정에
관여하는 신호전달 인자, 외부의 적과 싸우는 면역체계의 항체 등은 모두 단백질이다.
아미노산은 이런 단백질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들을 필수 아미노산이라고 부르며 현재까지 22개가 밝혀졌다. 이들 22개의 필수
아미노산은 기존 생물학 교과서에 실린 20개의 아미노산 이외에 1986년에 발견된 21번째 아미노산인
셀레노시스틴(selenocytein)과 2002년에 발견된 22번째 아미노산인 파이로라이신(pyrrolysine)이다.
22번째 아미노산 생합성 기작 규명
파이로라이신은 2002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미생물학과 조셉 크레스키(Joseph Krzycki) 교수팀이 발견했다.
연구팀은 소 내장에서 메탄가스를 만드는 고세균(원시 단세포생물, archaea)의 한 유전자에서 중간에 있는 종결 코돈에서 아미노산 합성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의문을 품은 연구팀은 이 종결 코돈이 기존의 종결 코돈과는 다를 것이라고 추정하고 연구한 끝에 새로운 아미노산이 합성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코
돈(codon)은 아미노산을 암호화하고 있는 DNA의 염기쌍으로 DNA 염기 3개가 하나의 코돈을 이룬다. DNA는 A, T,
G, C 등 4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됐다. 예를 들어 DNA의 코돈이 ‘ACG’라면 이것은 ‘알라닌’이라는 아미노산을 암호화한다.
코돈에는 필수 아미노산 20개를 암호화하고 있는 코돈 이외에도 단백질 합성을 개시하는 개시코돈과 단백질 합성 종료를 의미하는
종결코돈이 있다.
단백질을 합성하는 생체 분자인 리보솜은 mRNA의 염기서열을 읽어가는 도중 개시코돈을 읽으면
이곳에서부터 단백질 합성을 시작해야 한다고 인식한다. 개시코돈 다음에 있는 코돈부터 순서대로 아미노산을 합성해 종결코돈이 나오면
아미노산 합성을 중단한다.
파이로라이신은 2002년에 발견된 가장 최근의 아미노산이기는 하지만 세포 내에서 어떤
생화학적 기작을 거쳐 합성되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이런 가운데 크레스키 연구팀은 파이로라이신이 아미노산의 하나인
‘라이신’으로부터 합성된다는 점을 발견, 파이로라이신 생합성의 미스터리를 풀었다. 이번 연구결과는 과학저널
네이처(Natrue) 최신호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파이로라이신이 2개의 라이신 분자와 3개의 효소 반응으로 생합성
된다는 점을 규명했다. 이러한 파이로라이신의 생합성 과정은 다소 의외의 결과로 과학계는 받아들였다. 파이로라이신 분자구조의 특성상
그간 과학계는 파이로라이신의 기원이 보다 복잡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크레스키 박사는 “생합성 기작을 발견하기 1주일 전 토론에서 라이신으로부터 파이로라이신의 생합성은 이론적으로 가능하긴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파
이로라이신은 희소하며 현재까지 12개의 생명체에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희소성으로 파이로라이신은 생의학 분야에 새로운
단백질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파이로라이신의 생합성 경로가 밝혀짐에 따라 가까운 미래에 과학자들은 파이로라이신과 동일하거나
파이로라이신을 모방한 합성 분자들을 다양한 용도로 대량 생산할 전망이다.
유전자 코드 진화 단초 제공
파
이로라이신의 생합성은 대략 다음과 같다. 하나의 라이신 분자가 오르니틴 중간체로 전환된다. 이 중간체가 또 다른 라이신 분자와
결합해 최종적으로 파이로라이신이 합성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단지 2개의 라이신 분자와 3개의 효소뿐이다.
파
이로라이신의 화학적 구조는 라이신의 탄소 골격 구조와 닮았다. 하지만 하나의 탄소 끝에 링을 갖고 있으며 메틸 그룹이 붙어있다는
점이 파이로라이신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특징은 그간 파이로라이신의 기원이 무엇인지에 의문을 야기했다.
크
레스키 연구팀은 기존의 연구를 통해 파이로라이신을 포함하는 단백질을 합성하기 위해서는 3개의 효소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했다.
이들 효소는 PylB, PylC, PylD 등이다. 다른 연구팀의 보고에서오르니틴이 파이로라이신의 합성에 관여한다는 점도
밝혀졌다.
연구팀은 파이로라이신 합성 기작을 규명하기 위해 대장균인 E.coli 시스템을 이용했다. E.coli는
생명공학 실험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미생물의 하나이다. 또한 파이로라이신 합성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방사성 동위원소 표지와 질량
분석법을 이용했다.
PylB 효소가 라이신을 오르니틴 중간체로 전환하면 PylC 효소가 이 중간체와 또 다른 라이신을 반응하도록 유도한다. PylD 효소가 이 반응에 참여해 결과적으로 파이로라이신을 만든다.
크
레스키 박사는 파이로라이신 생합성 기작 규명이 유전자 코드가 어떻게 진화했는가에 대한 논의에 불을 당길 것으로 전망했다. 예를
들어 생물 공진화 이론에 따르면 같은 전구체로부터 만들어진 아미노산은 유사한 코돈을 가질 수 있다. 즉 파이로라이신이
라이신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라이신을 암호화하는 유전자 코돈과 유사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연구팀의 연구는
생물 공진화 이론에 잘 부합하기도 한다. 생물 공진화 이론은 어떻게 유전자 코드가 진화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의 하나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단지 몇 개의 아미노산이 초기에 존재했으며 이 아미노산으로부터 새로운 아미노산이 합성됐다. 파이로라이신은
라이신으로부터 합성됐으며 라이신은 아스파르트산으로부터 만들어졌다.
크레스키 박사는 “유전자 코드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이번 연구결과는 생물 공진화 이론과 같이 유전자 코드 진화를 다루는 다양한 이론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